엔터이슈2013. 7. 26. 10:29



아버지 황달중을 병문안 온 서도연은 구속당시 압수되었던 그의 소지품 가방을 병실로 가져왔다.

그런데 어색한 만남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지체없이 가방 속 자신의 물건들을 확인한 황달중은 대뜸 크레파스를 보지 못했느냐며 서도연을 다그친다. 과거 딸에게 크레파스를 선물하려고 했던 것이 기억난 황달중에게는 26년이란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여전히 소중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황달중이 애타게 찾은 크레파스는 다름아닌 서도연의 가방속에 들어 있었다.

절대로 전해지지 못할 것만 같았던 아빠의 크레파스는 그렇게 온전히 딸의 손 안에 있었고, 두 사람의 서먹하고 어색한 만남은 크레파스 덕분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허물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다시는 부녀 사이로 마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서도연은 아빠의 얼굴을 그려주면서 함께하지 못했던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을 못내 달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준 크레파스.

요즘 아이들도 여전히 크레파스를 사용하고 있을텐데 혹시 클로즈업된 이것마저도 PPL은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잠시 살펴보았다. 제 아무리 PPL이 넘쳐나는 세상이라해도 아이들의 학용품까지 홍보한다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절판은 아니지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중고 학용품으로 확인되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 수목드라마 1위를 고수하며 타방송 드라마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하 너목들)>은 지루할 틈 없이 마지막까지도 시청자의 눈과 귀를 단단히 사로잡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제작되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만큼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만 같다. 하지만 고질적으로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되면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PPL도 넘쳐나는 현상을 보이게 되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데 너목들도 이것을 완벽하게 피해가지는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너목들에는 참으로 다양한 품목의 PPL이 대홍수를 이루고 있다.

참치나 햇반을 비롯하여 커피, 초콜릿, 헤드폰, 가구, 스마트폰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품목들이 드라마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지난 13회 방송분에서는 드라마 진행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아웃도어브랜드가 지나치게 오래 노출되었고, 혜성이 빨래를 하는 과정에서 세제브랜드의 이름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면서 약간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게다가 수시로 등장하는 스마트폰 PPL중에는 제품을 비추는 것도 모자라 LTE-A와 관련된 간판을 대놓고 보여주는 장면이 나와 도가 지나치다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치 시청자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듯 이런 장면들 이후에는 어김없이 빠른 전개와 숨막히는 대결구도가 등장하여 덕분에 과도한 PPL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깨끗하게 잊게 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PPL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는 않다.

광고사에서 드라마 제작사나 방송사에 제작비를 일부 지원해주는 대신에 드라마 속에서 관련 제품을 등장시켜 홍보 및 판매에 일조할 수 있게 해주는 PPL은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양쪽을 모두 지켜보는 시청자의 입장도 고려는 해주어야 한다. 드라마의 흐름과는 무관한 눈살이 찌푸려질만큼 넘쳐나는 PPL은 몰입을 극도로 방해할 뿐이며 시청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모르는 바 아니며 PPL의 도움으로 작품의 완성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라 해도 드라마의 흐름을 사정없이 끊어버리거나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드라마인지 광고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PPL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언급한 것처럼 너목들 역시 여타의 인기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수도 없이 많은 PPL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드라마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PPL들이 그렇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극히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며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보여지는 PPL이 여전히 거북스러운 시청자들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너목들의 PPL은 뜬금없이 지나가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드라마의 흐름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도 적지 않아 이례적이다. 


지겹도록 모습을 비추고 있는 스마트폰, 너목들의 단골 손님이다.

하지만 26년이란 세월을 넘어 얼굴을 마주대고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황달중과 서도연 아니 아빠와 딸의 모습이 담겨 있는 스마트폰은 PPL이라고 생각되어 거부감이 들기 보다는 애틋하고 짠한 느낌을 먼저 갖게 했다. 혹여나 소중한 가족들의 사진이 스마트폰 메인에 없는 사람들이 시청했다면 당장에라도 저장된 가족들의 사진들이 없는지 뒤적거리게 만들 만큼 인상깊었던 장면이었다. 스마트폰 속 두 사람이 한 화면에 담겨있는 사진 한장만으로도 시청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띄울 수 있었고, 비록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갖을거란 상상도 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16회분에서는 중요한 장면이 등장하였다.
바로 수하의 꿈속에 등장한 혜성이 그의 품안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었는데, 마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그녀의 죽음은 시청자들을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혜성의 목에는 어김없이 예쁜 목걸이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누가봐도 PPL이란 것을 짐작케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는 단순한 홍보용이 아닌 이후 두 사람의 앞날을 짐작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재로 사용된 것임을 이후에 알 수 있었다. 


백화점에서 혜성과 헤어진 수하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는 목걸이를 사기로 마음 먹었는데 바로 꿈속에 등장하였던 그 목걸이였다. 자신의 비극적인 꿈 속에 등장했던 것임을 인지하지 못한 수하는 그저 혜성이 마음에 들어하는 목걸이를 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하나뿐인 목걸이를 손에 쥐게 된다. 

하지만 비극적인 앞날을 예고라도 하는 듯 길에서 소매치기에게 가방을 통째로 빼앗기고 마는데, 다행히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던 형사의 도움으로 목걸이가 들어있는 가방은 수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수하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목걸이, 역시나 혜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물건일 것이다.


형사들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혜성은 결국 민준국에게 납치를 당하고 만다.

사전에 범행을 위한 도구들을 꼼꼼하게 수집해 놓은 민준국은 홀로 최후를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고 결국 혜성을 납치하기에 이른 것이다.

행방불명된 혜성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은 수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기대했지만 싸늘하게 식어있는 민준국의 목소리가 전해지자 분노와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지난 밤 꿈 속에서 선혈을 흘리며 자신의 품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그녀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숨조차 쉴 수 없는 두려움에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민준국에게 납치된 혜성이 결국 죽음을 당할 것이란 예상은 너무나도 쉬운일이다. 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PPL인 줄로만 알았던 목걸이가 이전 장면에서 다시 수하의 손에 들어온 것으로 미루어보아 결국 혜성도 수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범에게 허무하게 목걸이를 빼앗겼다면 아니 목걸이가 먼저 그녀에게 전해지고 난 다음에 민준국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라면 몰라도 아직 목걸이는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혜성은 결국 수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PPL인줄 알았던 목걸이는 두 사람의 극적인 만남을 암시하는 결정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물론 너목들 속에 등장하는 PPL이 모두 위와 같은 훌륭한 역할을 해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마치 PPL을 위해 일부러 또는 억지로 씬을 꾸려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흐름을 끈끈하게 이어나가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PPL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극의 몰입을 높여주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어 불편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주고 있어 과도한 PPL에 신경쓸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PPL 탓에 채널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드라마를 모두 시청한 뒤 인상깊었던 장면과 어우러져 등장하였던 제품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찾아보게끔 하는 것, 작은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웬일인지 너목들의 PPL들은 그리 밉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