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3. 5. 31. 08:59



살아있는 한국 록의 전설이자 폭발적인 샤우팅과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한국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사나이.

하지만 의외의 구수한 사투리와 섬세하고 여린 감성에서 빚어지는 깨방정 입담으로 국민언니라 불리우고, 이제는 춤추는 록커로서 상남자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김경호.

더 이상 늙고 싶지 않다는 엉뚱한 고민을 들고 <무릎팍도사>를 찾아온 그의 인생은 시련과 좌절 그리고 극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랑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경호이지만, 학창시절 지독한 따돌림 때문에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여전히 마음 한켠에 간직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였던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상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그는 전학을 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아픈 기억을 어렵게 꺼내놓았다. 차라리 치고 받고 주먹다짐을 했다면 쉽사리 잊혀질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을 성적 노리갯감으로 삼으며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행동을 강요했던 친구들의 모진 행동들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에게는 아픔으로 남아있었다. 더욱이 믿었던 친한 친구마저 자신이 따돌림 당하고 폭행을 당하던 그 순간 외면하고 돌아섰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히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고통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혹여라도 자신 때문에 걱정끼쳐 드리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던 김경호는 다행스럽게도 자신과는 달리 학교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형의 도움으로 왕따의 고통에서 비로소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음악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바로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형때문이었다. 공부도 운동도 게다가 노래까지도 잘했던 형을 바라보면서 그에 못지 않게 노래와 음악에 남다른 자신이 있었던 김경호는 가수가 되보자라는 생각에 청소년가요제에 나가 의외의 수상을 하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학창시절 고통의 기억과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가수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 위한 그의 결심과 의지는 결국 학교를 알리고 빛낸 인물로 달라진 대우를 받으면서 자연스레 그를 괴롭히고 외면했던 친구들마저도 돌아서게 만들었고 나아가 그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놓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가수의 등용문으로 일컬어졌던 대학가요제까지 나가서 동상을 수상하면서 이제 김경호는 본격적으로 가수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시련이 찾아왔다.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활발할 가수활동을 시작할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그 어느곳에서도 그를 찾아와주는 회사가 없었던 것이다. 직접 발품을 팔며 여기저기 기획사를 찾아다니며 어필도 해보았지만 그 누구도 반겨주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라이브카페에서 노래를 하면서 지내온 긴 무명생활동안 한때는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고통의 시간들을 스스로 잘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고, 결국 6년만에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음악차트 8주 1위를 달성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같은 2집에 수록된 <금지된 사랑>과 3집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까지 연이어 대박을 터트리면서 단숨에 한국 록을 이끌어가는 젊은 선두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이번에는 죽을만큼 고통스러웠던 시련의 시간이 길게 찾아왔다.

소속사와의 불화로 회사를 나와 지인들과 직접 기획사를 차린 김경호는 짧지 않은 공백끝에 6집을 내놓았지만 웬일인지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자연스레 음악방송 출연도 쉽게 성사되지 못했던 탓에 그는 스스로 힘들게 만들어낸 음반을 져버리고 자포자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참으로 운이 없게도 의기소침하고 좌절을 맛보던 그 시기에 친구였던 윤도현은 월드컵으로 단숨에 국민록커로 각광을 받으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 그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친구의 성공을 흔쾌히 축하해주고 응원했어야 마땅했지만 상대적으로 그런 모습을 TV로 지켜보는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져 조금씩 대인기피증이 찾아오게 되었고 외출을 꺼리게 되면서 점점 세상과의 접촉을 멀리하게 되버린 것이다.

이전에는 자신의 음악성에 뚜렷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주위의 어떠한 충고의 말도 새겨듣지 않았던 그였지만, 슬럼프에 빠지고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져 더이상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닌지 극도의 회의감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좌절에 빠진 그가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절치부심 내놓았던 7집에서 타이틀곡인 <아버지> 대신에 핑클의 <NOW> 리메이크곡이 의도치않게 부각이 되면서 그의 록커로서의 정체성을 의심받기 시작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더 큰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 결국 이 때문에 친한 동생이었던 박완규와 짧지않은 시간동안 사이가 틀어지면서 그를 심적으로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성기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김경호를 향해 기자들마저도 연신 독설을 쏟아내기에 바빴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수에게는 치명적인 성대결절까지 찾아와 그를 더욱 더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하였다. 언제나 시원시원하고 파워풀한 샤우팅을 선보이며 좌중을 압도했던 그를 기대하였던 대중들은 성대결절이 찾아온 이후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실망감으로 바뀌게 되었고, 누구보다 자신의 모습에 극도로 실망한 김경호는 그렇게 원하고 좋아했던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를 끝내 버리지 않았다.

2011년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던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게 된 김경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는 너무나 절실했고 간절히 바랬다.

외적인 환경이나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여 외면하고 두려워하며 멀리해야만 했던 무대위에서 세상과의 조우를 그토록 간절히 바래왔던 것이다. 이제 이 무대가 아니면 다시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절박한 심정은 그를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결국 칩거하며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그에게 먼저 연락을 주어 무언의 격려를 해주었던 가왕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로 <나는가수다> 첫 1위의 영예를 얻으면서 떠나갔던 팬들의 마음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이후 최다1위와 최다득표수라는 신기록을 얻어내면서 국민록커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세상에 당당하게 알리게 되었다.

자신을 가둬놓은 틀을 스스로 완벽하게 깨고 나온 김경호는 이후 거칠 것이 없었다. 내노라하는 쟁쟁한 가수들의 숨막히는 대결에서 그는 언제나 완벽하고 자신감 넘치는 무대를 통하여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으며, 지켜보는 동료가수들조차도 그의 거침없는 질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시 돌아온 무대위에서 카리스마 넘치고 좌중을 압도하는 힘을 보여준 김경호는 반명 무대 아래에서는 너무나도 소탈하고 편안하면서 귀요미 모습마저 아낌없이 보여주면서 단숨에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고음뿐만이 아니라 연륜에서 느껴지는 깊이있는 목소리로 영원히 노래하고 싶다라는 그의 소중한 꿈을 들으면서 건강하게 다시 돌아온 김경호의 모습이 너무나 반갑다.

김경호가 희귀병과 싸우면서 굳건하게 이겨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모습을 <댄싱위드더스타3>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알리고 싶어했던 그의 의지와 도전하는 모습도 참으로 아름답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굴곡진 인생사를 살아오면서 이겨내기 힘들 것만 같았던 시련과 좌절의 순간들을 묵묵하게 이겨내고 삶을 포기하지 않은 그가 영원히 팬들의 곁에서 노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오늘 그가 새롭게 도전한 방송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기를 끝으로 바래본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 MBC 무릎팍도사>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