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3. 5. 7. 09:31



누구나 숨기고 싶은 아픈 비밀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크든 작든간에 남에게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기에 인간은 언제나 외로운 존재인가보다.

미스김과 장규직은 서로 마음 속 깊은 곳에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은 가슴아프게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하루를 바쁘게 보내면서도 어느순간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 지독한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두 사람은 나름의 방법으로 사투를 벌이고는 있지만 도무지 잊을래야 잊어버릴 수가 없어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하다. 술 한잔으로 털고 잊어버리기에는 그 아픔이 너무나 크기에 홀로 감당하기조차 벅차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아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들 하지만 섣불리 다른이의 아픔을 나누려 오지랖을 부린다면 오히려 그 상처는 더 크게 번질수도 있기에 참으로 조심스럽다.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픔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감당하기 어렵다고들 생각하지만 힘들고 아프더라도 아픔은 나누고 또 나눠야만 하고 더 늦기전에 깨끗하게 치유해야만 한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지금보다 더 큰 감당할 수 없는 아픔들이 언제나 우리들을 또다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빛나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을 떠난 지난 시절, 장규직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었는지 그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비록 젊은날 풋사랑이었다고는 하지만 그토록 서로를 사랑했던 장규직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떠난 이유를 그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여자와 눈이라도 맞아서 자신을 떠나버린 것이라면 욕이라도 한바탕 퍼붓고 술 한잔 마시며 깨끗하게 잊어버릴 수 있을테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 남자를 빛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인연이었을까? 6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뛰어넘어 와이장에서 금빛나는 장규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변해 있었다. 촌스럽고 무뚝뚝하긴 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다정다감했던 그는 온데간데 없었고 그저 독설을 내뿜으며 자기 잘난 맛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냉혈한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 남게 된 두사람, 금빛나는 용기를 내어 장규직에게 입맞춤을 하였지만 돌아온 것은 그의 차가운 반응뿐이었다. 입맞춤 하나로 지난 세월을 돌이키려 한것도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의 무덤덤하고 냉정한 반응은 빛나를 더욱 힘들게 하였고 그를 향한 마음을 조용히 정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회사의 업무로 모교를 찾은 금빛나는 우연히 만난 조교선배에게 장규직의 지난 아픈 과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취업준비로 한참 정신없었던 그 시절 그리고 홀연히 자신을 떠나버렸던 그 시절에 장규직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휴학을 내고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장규직은 금빛나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아버지가 자살을 하여 가세가 기울고 생활이 어려워 막노동을 전전해야만 했던 장규직은 더이상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해서든 자신의 힘으로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쳐야만 했다. 왜 미리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며 다그치며 서운해하는 금빛나의 마음을 모를리 없지만 내일아침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장규직은 공주님처럼 곱게 자란 금빛나에게 자신의 초라한 상황을 차마 전할 수가 없었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는 하지만 직접 그 상황에 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감히 그렇게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나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지독한 외로움. 그 외로움 속에서 빚어지는 고통을 어찌 감히 누구와 나눌 수가 있을까?

금빛나는 용서를 구했다. 철없이 투정부리고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며 어리광을 피우던 지난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했던 자신이 미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 전하였다.  


 

 


무정한과 장규직은 모르고 있었다.

미스김의 다리속에 어떤 아픔이 숨겨져 있는지, 그녀가 왜 예쁜 치마를 마다하고 굳이 바지만을 고집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다리가 못생겨 컴플렉스가 있는줄 알았다. 그래서 반드시 그녀의 못생긴 무다리를 보고 싶다는 일념하에 몰래 미스김의 씻는 모습을 엿보게 되었다. 하지만 미스김의 다리는 너무나도 예쁘고 늘씬하였다.

왜일까? 이토록 아름다운 다리를 왜 구태여 바지로 가리고 다니는 것인지 의아할 뿐이었다. 하지만 장규직이 잠시 자리를 떠난 그 순간 무정한은 보았다. 그녀의 다른 한쪽 다리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화상의 흉터를.

문득 무정한은 자신이 전경으로 근무하던 시절, 시위현장에서 농성하는 은행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그 노조원들의 시위속에 미스김도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초보신입시절 서투르고 실수연발이었던 미스김을 감싸주고 보듬어주었던 선배가 있었다. 언제나 상사들의 모진 질책속에서도 따뜻하게 자신을 챙겨주었던 그 선배를 미스김은 엄마처럼 따르며 마음을 나누었다. 하지만 정리해고의 풍파속에 시위를 하던 중 뜻밖의 화재로 선배는 목숨을 잃게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반드시 선배를 구해내고 싶었지만 결국 화재속에서 자신마저도 다리에 화상을 입은채 선배의 목숨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그 이후로 미스김의 다리에 새겨진 화상은 그녀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었던 그 선배를 정작 자신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세상을 향해 더욱 독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괜찮을거라고 했다. 자신이 선배와 몸담고 있었던 회사는 아무일도 없을거라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하지만 결국 회사는 자신들을 속이고 급기야 선배의 목숨마저 앗아가버렸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름과 아픈 상처를 숨긴채 미스김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아픔은 과연 어느 누가 치유해 줄 수 있을까? 그녀처럼 남몰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장규직일까 아니면 또 다른 아픈 과거속에 그녀와 연결고리가 닿아있는 무정한일까?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모습은 다르지만 다른이의 아픔 또한 자신의 아픔처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다. 자신이 죽을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다른사람의 아픔도 자신의 것처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미스김과 장규직 그리고 무정한은 비록 서로 다른 아픔으로 힘든 기억속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를 감싸안으며 아픔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단 사랑이라는 이름이 아닐지라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다치고 상한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 KBS2 직장의 신>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