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3. 4. 30. 09:10



<직장의 신> 9회분에서는 만년과장 고과장이 인사고과의 칼바람속에서 권고사직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자신은 있는 듯 없는 투명인간과도 같은 존재라며 미스김 앞에서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던 고과장은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만년과장에 머물러 있었다. 입사동기인 황부장을 상사로 모시며 오랜세월 지내고는 있지만 절대로 빈정이 상하거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승진에 대한 욕심 또한 잊고 산지 오래되었다. 아니 이제와서 그런 승진욕심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막내딸이 졸업할때까지만 회사에서 짤리지 않고 버텨만 준다면 그걸로 족할 뿐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디 그리 만만한 곳인가?

하루가 다르게 후배들은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고 매출급감으로 어려움에 처한 회사는 손쉬운 인력감축을 통하여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고과장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채 오늘도 틈만 나면 자리에서 잠자기 일쑤였고 인사고과를 위해 억지로 배우고 있는 영어수업의 과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후배들에게 손을 벌리기 바빴다. 그가 회사에서 받고 있는 연봉을 고려해본다면 참으로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노릇일 뿐이다. 


약간의 왜곡과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고과장은 50대 가장,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비록 드라마상에서 고과장은 능력도 열정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회사에 빌붙어서 연명하는 초라한 인물로 비춰지고는 있지만, 그도 왕년에는 황부장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업무에 매진하며 지금의 제이장이 대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제 한 몫 단단히 했던 인물이었다. 회사에서 내려진 업무라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열정적이고 파란만장한 시절을 장규직 못지 않게 그 역시도 겪어온 것이다. 

그러나 인생무상이라고 했던가, 지금의 고과장은 권고사직이라는 칼바람 앞에 한순간 꺼져버릴 수 밖에 없는 촛불의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능력과 비전이 없으면 회사에서 매정하게 내쳐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언제까지 동기니까 가족과도 같은 내 선배고 상사니까라는 이름하에 무한정 봐주고 감싸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과장이 권고사직 리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을 맨 먼저 접한 황부장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아프고 또 아팠다.

일에 치여 산다는 핑계로 너무나도 오랜만에 고과장과 젊은 시절 수도 없이 발걸음했던 선술집에 들러 술잔을 기울이는 황부장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무것도 모른채 자신과 술자리를 함께 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고과장을 그저 씁쓸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황부장은 자신의 힘으로 그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지난 시절 자신들이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이뤄냈던 무용담들을 웃으며 나누는 이 자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황부장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리고 젊은 시절 뼈빠지게 일하며 모은 돈으로 어렵게 장만한 집을 팔고 전세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때 차마 황부장은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고과장을 면전에 두고 권고사직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나누는 술 한잔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 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과장의 권고사직을 무정한으로부터 전해들은 장규직은 황부장과는 달랐다.

오늘 보고 내일 또 반드시 봐야하는 고과장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때 장규직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비록 업무에 있어서 언제나 뒤쳐지고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고과장이었지만 그는 분명 내가 하늘같이 모셨던 상사였고 선배이며 동료이자 내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인사고과라는 칼바람속에서 누군가는 분명 회사를 나가야하는 비정한 현실을 제 힘만으로 이겨낼 수는 없었지만 이대로 고과장을 떠나게 할 수는 없었다.

마침 부서 전체의 사활이 걸린 신제품 아이디어 기획안을 제출해야만 하는 프로젝트에 장규직은 고과장이 실적을 낼 수 있도록 무정한과 힘을 모으기로 했다. 부서 뿐만 아니라 회사전체의 사활이 걸려 있는 만큼 이번 기획안만 통과된다면 권고사직의 칼바람속에서 분명 고과장을 살려낼 수 있을 거란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장규직은 왜 그리도 고과장을 지켜내고 싶었던 것일까?

한때는 자신이 모시던 상사였고 지금은 동료로 지내고 있는 고과장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내일 또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바로 고과장은 내일도 모레도 얼굴을 마주하며 밥도 같이 먹고 술잔도 기울일 수 있는 내 사람이기에 장규직은 그를 지켜내고 싶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과장은 미래의 장규직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분명 했을 것이다. 지금은 능력도 있고 승승장구하며 젊은 나이에 팀장의 자리에 올라 보란듯이 큰 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자신이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거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나이를 먹고 지금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처자식들을 건사하느라 회사일에서 점점 더 뒤쳐지다보면 어느새 고과장처럼 파리목숨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은 하루가 다르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데 언제까지 자신만 철옹성마냥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고과장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자신마저도 그와 다를바 없이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짐을 싸야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장규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규직은 고과장을 지켜내고 싶었고 지켜내야만 했다.

그리고 미련스럽고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혹여라도 자신이 고과장의 권고사직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처럼 훗날 자신이 같은 위기에 처했을때 후배나 동료들이 자신을 위해 같은 노력을 해주기를 은연중 그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물론 제 앞길 찾아가기 바쁜 각박한 회사라는 조직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일처럼 몸과 마음을 바쳐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기가 쉽지 않다라는 것을 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장규직은 무조건 고과장의 사직을 막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가 살고 종국에는 자신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어보인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 KBS2 직장의 신>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