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3. 4. 9. 09:23



결국 미스김(김혜수 분)은 자신의 신념을 접어둔 채 회사와 장규직(오지호 분)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참담한 심정으로 사직서를 꺼낼 수 밖에 없었던 그를 일순간 회사를 구해낸 일등공신으로 바꿔놓은 마법같은 일을 다름아닌 미스김이 자발적으로 해낸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다는 그녀, 오로지 점심시간과 수당을 위해서만 일한다는 그녀가 회사와 장규직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무정한(이희준 분)과 달인의 간절한 부탁이 있어 그녀의 마음이 한순간 돌아선 것일까?


회사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닌 오로지 생존을 하는 곳이라 생각하는 그녀가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의지와 신념들을 그렇게 쉽사리 한순간에 무너뜨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마음이 움직였던 이유를 굳이 꼽아본다면 오늘도 회사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채 희생을 강요당하고 밤낮으로 업무에만 매진하고 있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계약직들을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꽃게손질의 달인이 사고로 잃어버린 절대가위를 찾기 위해 한강에서 해녀복을 입고 미스김이 건져내는 설정은 어찌보면 실소를 자아내게 할 만큼 엉뚱하고 쌩뚱맞은 장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미스김이 장규직에게 계약직들의 속내를 전하기 위한 조금은 구태의연하지만 불가피한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계약직들에게는 애사심도 동료들과의 의리도 없을 거라 단언하는 장규직에게 미스김은 계약직의 애환과 그들만의 순수하고 보이지 않는 의리가 나름 존재하고 있음을 전하였다.


"해녀들이 바닷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단 1분입니다.

1분이 지나면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1분마다 생존이 달려있는 그들에게 당신들과 같이 거창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다음 사람을 위해서 전복을 덜 따는것, 그게 우리들에게는 작은 의리입니다."


뭐가 그리도 거창하고 대단하냐며 비아냥 거리는 이도 있겠지만 그들이 주어진 환경속에서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동료들과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의리와 동료애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미스김은 전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 속에서 미스김이 도대체 왜 회사와 장규직을 위기에서 구해냈는지도 어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자신에게 돌아올 시간외 수당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보다는 회사가 건재해야만 그 속에서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계약직들 또한 자신의 일자리를 잃지 않고 연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서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구해내지 못했던 동료들의 죽음을 그녀는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지난 일들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이제 또다시 자신이 외면한채 나서지 않는다면 총체적인 경영난에 빠져버린 사측에서 최우선적으로 계약직부터 정리해고를 감행할 것이 뻔할거라는 그녀의 생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죽기보다 싫을 만큼 내키지 않았던 일을 스스로 발벗고 나서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종국에는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정규직의 대표인물인 장규직 또한 계약직 신분인 그녀와 불안정한 신분이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를 바는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멀쩡했던 퍼즐이 산산조각 흐트러지는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생길 수 있는 것처럼, 한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철옹성 같았던 그의 정규직 일자리도 바람 앞의 촛불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6개월간 공을 들여 완성해낸 퍼즐이 잠시 잠깐의 실수로 처참하게 바닥에 널부러졌던 것처럼 승승장구 잘나가던 장규직 역시 다를바 없었다. 언제나 회사를 위해 최고의 성과를 내주며 승승장구 잘나가던 마케팅 팀장인 그 역시도 한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외로운 밤 사무실에 홀로남아 사직서를 손수 써내려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것이라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초보 계약직으로 대표되는 정주리(정유미 분)가 늦은 밤 라면을 바닥에 엎은 것도 매한가지 다를바는 없었다.

라면은 3분이면 쉽게 끓일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의 대표주자이다. 비록 아깝기는 하지만 얼릉 정리하고 또다시 물을 끓여서 3분이 지나면 같은 결과물을 완성해 낼 수 있기에 귀찮기는 해도 몇천피스나 되는 퍼즐을 엎은 것보다는 좌절감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드는 귀차니즘과 상심은 퍼즐에 빗대어 덜하다고 볼 수 만은 없다. 게다가 그 라면이 좁은 단칸방에서 늦은 밤 외로이 홀로 지친 몸을 이끈채 완성해 낸 결과물이라는 전제를 더한다면 그 비참함과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물론 계약직을 인스턴트 라면에 빗대어 놓은 설정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 사회실정을 비추어본다면 작가의 이러한 설정들을 비난하고 부정할 수 만은 없는 일인지라 그저 씁쓸하게 보아넘길 수 밖에 없는 장면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흐트러진 퍼즐과 엎어진 라면.

오랜시간 조심스럽게 공을 들여야만 하는 것과 짧은 시간안에 너무나 쉽게 완성해 낼 수 있는 두가지의 사물을 통하여 그로 대변되는 인물인 장규직과 정주리를 통하여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종국에는 정규직과 계약직 모두 아웅다웅 할 필요없이 서로 돕고 의지하며 회사라는 거대조직안에서 공생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내일 또 볼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는 장규직, 정작 본인이 내일 또 볼 수 없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더 늦기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 KBS2 직장의 신>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