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1. 11. 29. 07:00










이강훈(신하균 분)에게 조교수 임용은 목숨과도 견줄만큼 소중한 목표였습니다.
그가 서준석(조동혁 분)의 멱살을 잡고 피를 토하듯 그를 원망했던 것은 단순히 자신의 자리라 여겼던 조교수 임용을 하루아침에
뺏겼다는 억울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보잘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힘과 실력으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래서 삶의 이유이자 전부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입술을 깨물며 참고 또 견디며 지내왔지만, 결국 그 마저도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벼랑 끝에 내몰린 절망감에 치를 떨 수 밖에 없었던 이강훈은 더러운 세상을 대신하여 준석에게 처절한 절규
를 퍼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철저하게 자신의 실력과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이강훈에게 조교수 임용은 최후의 보루였지만 결국 물
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강훈이 그토록 충성을 다하여 믿고 의지해왔던 고재학(이성민 분) 과장은 번번히 자신이 필요할때
만 그를 찾기에 바빴고, 정작 강훈이 절실한 도움을 요청할때면 그는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하기 일쑤였으며 오히려 자신의 허물
을 뒤집어 씌우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신의로 맺어진 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빌 언덕이라 생각했던 고과장이 서서히 자신에게
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강훈은 허탈함과 배신감에 가슴 아파하며 또다시 외톨이가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강훈은 더 큰 절망감과 치욕스러움을 맛보게 됩니다.
바로 강훈의 어머니 순임(송옥숙 분)의 사채빚을 받아내기 위해 사채업자가 병원으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그동안 철저하게 빈틈없는 모습만을 보여왔던 이강훈은 병원관계자 및 환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채업자에게 망신을 당하고 맙
니다. 절대로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치부가 만 천하에 공개되어 버리자 이강훈은 패닉상태에 빠져버리며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간신히 사채업자에게 일주일간의 말미를 얻은 강훈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순임에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꺼내
버리고 맙니다.
"그때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랑 아버지 버리고 집 나가셨을때요. 나한텐 (엄마가) 없는게 나았어요."
두 사람을 두고 홀연히 집을 나가버린 순임은 강훈의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서 진료 거부를 당해 사망한 이후, 염치불구하고 배
가 부른 채로 아들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차라리 그때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엄마때문에 슬퍼하거나 노여워할일
조차 없었을텐데, 매번 빚더미와 마음의 상처만 주는 엄마라는 존재는 강훈에게는 그저 원망과 분노의 대상일 뿐입니다.

가까스로 선배의 도움을 받아 강훈은 사채빚을 모두 갚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순임은 양말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와 강훈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아들의 눈에는 누더기같은 신발에 양말조차 신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불쌍하고 가련한 엄마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기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리고 눈 한번 따뜻하게 마주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
고 불쌍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갈 뿐이기에 그저 개탄스럽고 원망스럽기만 하여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해주지 못한 채 눈물을 집어삼키며 뒤돌아 섭니다.
 



바로 그때 순임은 강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미안해" 라는 말을 전합니다.
그저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 뿐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미안함일 것입니다.
어린 것을 돌보지 않은채 무심히 떠나야 했던 지난 날, 남들처럼 변변하게 뒷바라지를 해주기는 커녕 이날 이때까지 매번 빚잔치
에 허덕이게 만들면서 망신이란 개망신은 다 시켜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부끄럽고 당장에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순임은 강훈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 미안함을 전해받은 강훈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는 커녕 오히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함께 차디찬 세상속에 철저하게 혼
자라는 생각만 더욱 들게 만들뿐이었습니다. 그동안 힘든 생활속에서도 간신히 버텨낼 수 있었던 근간을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리
는 엄마의 미안해라는 한마디는 그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성공을 위해 더욱 독해질 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 줄 뿐이었습니다.
맨발에 헌 신발을 질질 끌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며, 이 지긋지긋한 운명을 갈아엎어놓
기 위해 더욱 독해지고 철저하게 고독과 싸워나가기 위해 이를 갈 수 밖에 없는 이강훈의 모습, 그저 남일처럼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환경이 더욱 이강훈을 짓누르고 옥죄어올수록 그는 더욱 냉혹해지고 독해질 수 밖에 없는 처지 또한 어느정도 이해됩니다.
앞으로 이강훈의 운명이 어떤 장난으로 인해 좌지우지될지 모르겠지만, 그의 독한 눈빛과 차가운 말 한마디조차 모두 남을 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수단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어 한편으로는 그가 너무나 불쌍하
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