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3. 10. 2. 09:35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25년만에 성사된 리턴매치 유남규-김기택의 경기는 명승부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나란히 금-은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 주었던 두 레전드가 예체능에서 25년만에 선보여준 리턴매치는 그야말로 현역 국가대표의 결승전 경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경기력은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경기 내내 여전히 녹슬지 않은 유남규의 서브는 어떤 회전을 거는지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속도를 보여주며 김기택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기택은 일반 라켓과는 달리 구질이 변칙적으로 변화하는 핌플러버를 여전히 택하고 있는 덕분에 유남규로서는 어떤 구질이 오는지 예측할 수 없어 손쉬운 승부를 장담할 수만은 없었다.

유남규가 화려한 기술과 파워풀 넘치는 공격위주의 플레이라면 김기택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공플레이로 박빙을 이뤘던 것이다.


경기 초중반까지는 줄곧 유남규의 리드로 이어졌다. 하지만 약간의 방심과 긴장이 풀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김기택은 꾸준히 점수를 획득해가며 추격의 고삐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점수가 벌어질 듯 할때마다 김기택의 빈틈을 찌르는 송곳 플레이가 빛을 발하며 유남규를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현 국가대표 감독인 유남규는 여전히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꾸준히 훈련과 연습을 이어오고 있는 덕분에 김기택의 추격을 이내 따돌리며 중반 이후까지도 리드를 이어나갔다. 경기 중간중간 김기택의 탄식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유남규는 선수시절보다 더욱 더 빠른 손목 움직임으로 서브가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최상의 실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남규의 경기 스타일을 훤히 꿰차고 있는 현정화가 곁에서 수많은 조언을 해주었지만 김기택의 눈에는 유남규의 서브가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 속수무책이었던 것인데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공백도 길었고 경기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나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유남규와 김기택을 오랜시간 곁에서 지켜봐왔던 현정화는 지나친 긴장감 때문에 현역시절의 화려한 모습들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지만, 예체능 멤버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25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파워풀하고 숨막히는 박빙의 승부를 펼쳐보이는 두 사람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경기 스타일은 당시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과거 서울올림픽 결승전과 마찬가지로 김기택의 스매싱과 유남규의 리시브 랠리 장면이 그 모습 그대로 재현이 된 것인데, 당시와 똑같은 랠리가 펼쳐져 모두를 숨막히게 만들었지만 역시나 그때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참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김기택이 승리를 거두며 막판 흐름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25년만에 성사된 리턴매치에서 설욕을 하느냐 아니면 현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느냐의 심적인 부담속에서 결국 승리는 유남규에게 돌아갔다. 종반으로 치닫는 그 순간 잠시 잠깐의 상념에 빠져들었던 김기택은 결국 심적인 부담감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유남규에게 아쉬운 패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호동의 말처럼 이 경기에서 패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 모두 승자임에는 분명하였다.

그리고 멋진 경기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을 엿볼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순간이기도 했는데, 우선 경기를 마치고 유남규는 숨겨왔던 심적인 부담감을 토로하였다. 현역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당연히 이겨야 하는 경기였고 명예가 달려있었기에 이루말할 수 없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이다. 경기 초반 김기택의 움직임을 보면서 조금은 편하게 쳐도 되겠거니 마음을 놓고 있었지만 어느새 자신이 따라잡힌 것도 모자라 역전이 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택이 형이 마지막에 저에게 승리를 넘겨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역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지게 되면 은퇴를 해야되니 형님께서 봐주신 것 같습니다."


"남규와의 대진이 성사됐을때 자칫하면 남규의 화려한 기술에 내가 희생양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지는 것은 좋지만 어떻게 질 것인가도 중요했고 또한 좋은 모습으로 져야했는데 솔직히 자신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위해서 남규가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선배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배려해 준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멋진 경기만큼이나 서로를 배려하고 겸손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토록 훌륭한 인성을 가진 선수들이 우리나라의 국가대표였다는 것이 새삼 자랑스러웠고 무려 25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세월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처럼 비록 지금은 한 경기를 뛰었을 뿐인데도 다리가 풀리고 호흡이 가빠오는 나이가 되었지만,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며 겸손해할 줄 아는 두 사람의 모습은 탁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현역 선수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이 레전드라 불리는 이유, 비단 과거의 영광에서 비롯된 허울 좋은 말이 아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본보기가 되고 귀감이 될 만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 KBS 우리동네 예체능>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