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3. 10. 1. 09:22



"엄마를 사랑하긴 한건지 모르겠다."


은상철은 자신의 죽은 아내를 과연 사랑했을까?

그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했다.

결혼도 하기 전 생각지도 않았던 첫째아이를 임신한 아내에게 뱃 속의 아이를 지우자고 했지만 그녀는 자살을 운운하며 결국 아이를 출산하였다. 이후로 아내는 아이들이 더 생기게 되면 겉돌기만 하는 은상철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좋은 남편 그리고 아빠로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자녀가 넷으로 늘어나면서 은상철은 더더욱 가족이라는 짐이 그저 무겁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기러기 가족이 된 이후로는 사이가 더욱 소원해지고 어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수상한 가정부>는 막장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단지 불륜이라는 소재 뿐만 아니라 왕따, 자살, 유괴 등 좀처럼 드라마속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단어들과 소재들을 너무나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종국에는 가족의 평화와 힐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련의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치원생의 납치 자작극이나 자살 등의 소재들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현실성 떨어지는 수상한 가정부 박복녀라는 특수한 인물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일들이기에 시청자들의 공감대 형성은 더욱 어려운 부분들이다. 가족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저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이 모든 것들이 과연 현실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박복녀라는 인물을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가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가족의 문제들은 그저 외면하고 모른척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으로 묘사하고는 있지만 현실속에서 이와 유사한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은상철의 네 자녀들 중 막내를 제외하고 세명의 아이들은 아버지 은상철을 홀대하고 윽박지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물론 그가 불륜을 저질러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란 것이 모두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도 아이들은 은상철을 무시하고 마치 친구대하듯 명령조의 반말들을 서슴치 않았다. 친근감의 표현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의 이러한 모습들은 아마도 기러기가족으로 오랜 시간 지내오면서 아빠에 대한 존재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을 온전히 보살펴주고 감싸안아주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사람 바로 곁에 있는 엄마라는 생각만 가득할 뿐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물론 가장으로서 은상철의 잘못이 크긴 하겠지만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조금 가혹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불륜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그가 무엇을 고민하고 걱정해왔는지 정작 마음을 나누고 귀를 열어주는 이가 단 한사람도 곁에 없다라는 생각이 그를 겉돌게 만든것은 아닐까?


 

 

 


둘째 두결은 아버지가 바람난 사실을 알고 난 후 화를 참지 못하고 아버지 은상철을 밀어서 넘어뜨리며 온갖 폭언을 퍼붓기에 이른다. 하지만 은상철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채 그저 아이의 폭언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위선자라고 외치는 아이가 떠나고 난 후 넋두리를 읇조릴 수 밖에 없었다.
"진짜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진짜 사랑하고 있는지. 왜 다른 아빠들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건지."


박복녀가 차려준 아침상.

은상철은 자녀들의 빈자리보다 오랜만에 마주한 청국장이 반가웠다. 냄새나서 싫다는 아이들때문에 좋아하는 청국장을 먹기 어려웠는데 아이들이 없는 덕분에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솔직히 다행이다 싶어요. 더이상 좋은 아빠인척 안해도 되니까. 

실은 주렁주렁 달린 아이들 때문에 날아가지 못한 선녀와 나뭇꾼의 선녀가 바로 나였습니다.

보통의 아빠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부성이 부족한 거에요."


은상철은 이제서야 깨달았다.

네 자녀가 자신의 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은 결코 좋은 남편도 아빠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좋은 아빠인척 하느라 부단히도 애를 썼지만 그마저도 쉽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과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고 그럴때마다 도망가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이었다. 


하지만 은상철의 마음에도 변화의 바람은 일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감추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그였지만 처제에게 아내의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막내딸을 찾아다니면서 불륜녀인 윤송화에게 전화가 걸려왔지만 전과 달리 유혹을 뿌리치고 끊어버리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기만 하다. 이제 겨우 죄책감에서 비롯된 변화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빠도 혜결이 사랑해라는 막내딸의 질문,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재차 은상철에 질문을 던지는 막내딸에게 그는 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채 그저 미안하다라는 말을 건네었다. 물론 그 순간 그가 사랑해라는 말을 건넸다면 자녀들의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은 치유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지금은 그런 허울좋은 말 한마디로 어린 막내딸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그런식으로 또다시 가족의 울타리안에서 도망치거나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하의 나쁜놈이지만 분명 그의 마음속에는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먼 길을 돌아오고 있기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수상한 가정부 박복녀의 말처럼 가족을 화해시킬수 있는건 오로지 가족뿐이다라는 말을 은상철이 과연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지 다음이 기다려진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 SBS 수상한 가정부>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