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이슈2017. 2. 11. 08:34



"속이 다 시원하네!"


옆 좌석에서 영화를 보던 연세가 지긋하신 노부부가 엔딩 쿠키영상까지 지켜본 뒤 느즈막하니 자리에 일어서면서 한마디 하셨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두 분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나누지 못한 영화 얘기를 서로 먼저 하느라 바빠보였다.


영화 <공조>는 비밀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내려온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과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의 남북 최초 비공식 합동수사 작전을 그린 영화다.


관객수 5백만이 넘어 깜짝 선물로 관객들에게 커피를 선물로 제공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공조>는 벌써 7백만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경쟁작 <더 킹>이 5백만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놀라운 뒷심이다.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그에 대한 정보들은 가급적 멀리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공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현빈과 유해진이 주연이라는 것과 남북 최초 비공식 합동수사가 소재라는 것이 전부였다. 


보고난 소감은 후회없이 잘 봤다라는 것.

두 시간이 조금 넘는 런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다.

화려한 액션을 보는 재미와는 달리 스토리가 다소 진부한 면이 없지 않고 뻔하디 뻔한 권선징악으로 마무리 되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분명히 있다. 



 


북한 사투리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던 차도남 김주혁의 표독스러운 눈빛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가 출연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무척 반가웠는데, 예능프로그램에서 봐왔던 순딩이 허당스러운 모습과는 영 딴판인 독기를 내뿜는 서슬 퍼런 시선에 또 한번 놀라웠다.


배우는 역시 배우였다. 

데뷔 20년만에 첫 악역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어색할 수도 경직될 수도 있을텐데, 김주혁은 뼈 속까지 피 한방울 남김없이 차기성이 되어 있었다. 눈빛 하나만으로 지켜보는 모든 이의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그의 연기때문에 가위에 눌릴 지경이다.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 일색이었던 <공조>에서 코믹했던 장면 때문에 서너번 웃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 절반은 바로 임윤아가 등장한 신이었다.


"언니 남편만 중요해? 남의 남편은?"


스크린 첫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맞춤 옷을 입은 것 마냥 능청스럽고 푼수끼 넘치는 그녀의 코믹연기는 단연 최고였다. 차기작을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여자... 사랑해요?"

불이 꺼진 방에 들어가 현빈인 줄 알고 애절한 고백을 전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문득 영화를 다 보고난 뒤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막바지 유해진의 가족이 김주혁의 무리들에게 납치되는 장면에서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그래서 관련 기사들을 찾고보니 윤아의 캐스팅이 늦어진 바람에 시나리오를 쓸때부터 유해진의 처와 아이만 납치되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윤아까지 함께 납치되었다면 아마도 구출되는 장면에서 코믹한 장면이 더 나왔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임윤아는 제 몫을 단단히 해줬다. 아쉬움이 남을만큼.




유해진의 연기는 <공조>에서도 빛을 발했다. 

현빈의 몸을 불사르는 화려한 액션에 그의 생활 연기가 조금은 가려진 듯 하여 아쉽기는 하지만 영화를 모두 보고 난 뒤 강진태 역에 유해진 말고 다른 배우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현빈의 물휴지 액션이 탐이 났던 것일까?

중국집에서 고립무원 상태가 되어버린 유해진 역시 물휴지를 집어들지만 엉망진창.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코믹버전으로 흘러가버렸는데 이건 전적으로 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이후 현빈의 매력을 뺏기 위해 물휴지 액션을 고의적으로 따라한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쇄도했었는데 유해진의 답은 "그게 뺏어지는 거에요?"(ㅎㅎㅎ) 매력을 뺏지는 못해요. 그걸 제가 어떻게 뺏겠어요.."


전작 <럭키>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쏟아낸 탓에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도 있지만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땀은 결코 배신을 하지 않았다.

물휴지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액션 스쿨에서 4개월간 피나는 연습을 했던 현빈은 이외에도 대역없이 대부분의 액션연기를 직접 소화해냈다. 달리는 차에 매달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높은 곳에서 서슴치 않고 뛰어내리는 장면도 여러번이었다.



 


관객들의 심장을 덜컹 내려앉히며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나왔던 두 장면이다.


오세영 감독 "실제로 사고가 날 뻔해서 진짜 섬뜩했던 적도 있었어요."

유해진 "매번 옆에서 천천히 해, 무리지 않니라는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어요."




역대 한국 영화에서 베스트 카체이싱 장면을 꼽는다면 무조건 다섯손가락 안에 들만한 장면이 <공조>에서 탄생이 되었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바로 이 컷을 얼핏 보고 <공조>를 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배우들의 열연과 감독의 열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명장면이었다.  


김주혁 "처음에는 60km로 달렸어요. 그런데 모니터 보니까 너무 느린거에요. 그래서 나중에는 90, 100km까지 갔어요. 그래야 차선을 갑자기 바꿨을때 휘청휘청거리는게 나오니까."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색깔들이 어우러져 치명적인 매력을 조화롭게 발했던 영화 <공조>,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다. 엔딩 쿠키 영상에는 유해진이 역으로 북한으로 건너가 현빈과 조우하는 장면이 나온다. 속편을 염두해두고 만든 영상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성사만 된다면 세 남자는 기꺼이 출연할 의사를 밝힌 상태이니 기대를 해도 좋지 않을까?

Posted by 믹스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