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2017. 1. 21. 06:57


▲ 사마르칸드 티무르 동상


최후의 유목제국으로 알려져 있는 티무르제국의 지도자 아미르 티무르는 전장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하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름 티무르는 '철(쇠)'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힘과 용기를 상징합니다.

티무르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 근방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왕족이 아니었기에 가문의 도움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을 정복해 나간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무자비하고 잔혹하기 그지없었던 티무르를 힐난하는 이들마저도 그의 천재적인 지략과 압도적인 정복능력만큼은 인정을 하고 있는데 불패 신화를 이뤄낸 티무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멈출 수 없는 정복욕




티무르는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 남북으로는 러시아내륙~북인도, 동서로는 중국 변방에서 아나톨리아반도까지 정복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티무르의 시선은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인도를 향했습니다.

인도 정복이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해발 6천미터의 힌두쿠시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며 게다가 당시 최강이었던 코끼리 부대로 중무장한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티무르의 정복욕은 멈추지 않았고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마침내 인도 원정에 성공을 하는데, 그의 행보는 스위스 산맥을 넘었던 나폴레옹과 알프스 산맥 횡단의 한니발에 버금가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영락제


노년이 되어도 티무르의 정복욕은 사그러들지 않았는데 평생의 숙원이었던 명나라 원정을 기어코 떠납니다. 그러나 당시 명나라는 영락제의 치하에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세가 결코 티무르에 눌릴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빅매치로 기록될 뻔한 티무르제국과 명나라와의 전쟁은 성사되지 못했는데, 바로 명나라 원정을 떠나는 길에 티무르가 허무하게 병사를 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 타고난 전략가




티무르는 체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기존의 체스에 몇가지를 더하여 자신만의 체스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체스를 두면서 티무르는 전략을 떠올리거나 정세를 살펴보는데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지략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화약, 코끼리, 기병 등 상대방의 전략 전술을 스폰지처럼 자신의 것으로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천부적인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례로 티무르가 인도 정복과정에서 최강의 코끼리 부대를 맞닥뜨렸는데 낙타 등에 짚을 얹은 뒤 불을 붙여 내달리게 하는 전략을 이용하여 초토화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게다가 이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는 포획한 코끼리를 역이용하여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 정말 장애가 있었나?



  

▲ 1941년 티무르 유골 조사


여러 사료들을 통하여 그리고 구 소련 학자들이 직접 유골을 살펴본 결과 티무르가 장애가 있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티무르가 한쪽 다리의 장애가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치 않습니다. 

청년시절 양떼 주위를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양치기가 쏜 화살이 어깨와 엉덩이에 맞아서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설, 기병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부상을 입고 갖은 고문을 당한 끝에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설 등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전장에 나서는 지휘자로서 최대 약점인 신체적 장애가 분명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른쪽 넓적다리뼈와 무릎뼈가 이어지는 부분에 심각한 손상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서 생전에 오른발을 끌면서 걸을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부 연구를 통해서 다리 뿐만 아니라 왼쪽 어깨와 손과 팔꿈치에서도 상당한 손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티무르의 다리 장애를 빗대어 절름발이 티무르를 의미하는 '타메를란(Tamerlan)'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티무르는 자신을 놀림거리로 생각하는 적들을 더욱 더 처절하게 응징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함




전장에서 승리를 거둔 후 전사한 이들의 해골로 탑을 쌓게 하여 공포심을 극대화한 것으로 유명한 티무르는 도시를 함락시킨 뒤 수천명을 생매장시키는 등 잔혹성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티무르는 줄곧 칭기스칸과 비교되곤 하는데, 칭기스칸이 항복하거나 투항하는 적을 살려주었던 것에 반하여 티무르는 가차없이 살육해버리는 잔인함을 보였습니다. 아무런 기반없이 맨몸으로 제국을 건설하는 데에 그의 잔인함과 공포스러움은 큰 무기가 되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의 흉폭함은 더해졌다고 합니다.




■ 사후 저주




▲ 티무르의 관


티무르 관이 보관되어 있는 '구르 아미르'는 티무르가 원정길에서 죽은 자신의 손자 무하마드 술탄을 기리기 위해서 건축한 무덤입니다. 


이곳 지하에 있는 티무르 관에는 고대문자로 경고문이 적혀있습니다.

"내가 죽음에서 깨어 일어났을때 세상은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 소련의 스탈린은 경고문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었기에 티무르의 관을 열어서라도 그의 전설적인 힘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1941년 구 소련의 학자들은 연구를 위해서 관을 열었는데,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는 사건인 '바르바로사 작전'이 일어났습니다. 


미신으로만 여겨졌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것에 놀란 스탈린은 다시 관 뚜껑을 납으로 용접하였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구 소련은 우여곡절 끝에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은 이후로 티무르의 관이 보관되어 있는 지하에 내려가지 못하도록 명령을 하였고 두 번 다시 관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믹스라임